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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살배기 딸이 토마토를 따더니 소매에 쓱쓱 닦아 바로 한입 베어 먹는다.아빠가 직접 키운 토마토니까 안심하고 먹어도 된단다. 평생을 농사에 매진하며 살아온 부모님도 여전히 정정하시다. 오늘도 송창화씨와 함께 비닐하우스를 누비고 계신다. 3대가 함께쓰는 미소농장의 전원일기를 살짝 들여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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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옥한 토양에서 햇살 가득 품고 자란 '짭짤이'

"이게 짭짤이 토마토예요. 왜 짭짤이냐고요? 여름에 목마를 때 물을 마시면 갈증이 해소되잖아요. 그런데 마시다 멈추면 계속 갈증이 나겠죠? 토마토도 마찬가지입니다. 30분 물 줄 것을 5분만 주고 끊습니다. 그렇게 수분만 유지되게끔 하면 과육이 커지지 않고 맛이 농축되는 것이죠. 소금물을 넣어서 짭짤이라고 한다는 낭설이 돌기도 하는데 그건 아닙니다. 하하.'

 

토마토가 알알이 익어 가는 봄날, 미소농장은 수확 작업이 한창이다. 부산 강서구의 낙동강 하류 삼각주 평야 지역은 토질에 염분이 많이 함유되어 있다. 일조량도 많다. 그래서 이곳에서 나는 토마토는 다른 지역 토마토에 비해 당도가 높고 신맛과 짭짤한 맛이 함께 어우러진다. 육질도 단단하여 씹는 맛이 좋다. 덕분에 짭짤이는 미소농장에서 가장 인기 있는 상품이다.

 

미소농장 송창화 대표는 부산 강서구 토박이다. 강동동에서 나고 자라 지금도 부모님과 함께 2만3천140㎡ 가까이 농사를 짓고 있다. 하우스 열여덟 동에 토마토와 배추를 재배하고, 벼농사와 녹비작물 등 이모작으로 논농사도 함께 짓는다. 스물아홉 살에 농사일을 시작했으니 이제 십 년을 넘겼다.

 

"20대에는 타지에 나가서 돈을 벌었습니다. 울산의 조선소에서 일하다가 창녕에서 양파랑 단무지 출하 작업도 해 보았고요. 강원도에서 배추며 무 농장 일도 했습니다. 스물아홉 살에 고향으로 돌아왔어요. 아버지가 편찮으셔서 농사를 물려받게 되었지요." 본격적으로 농사꾼의 길로 접어들면서 2012년에는 농업전문학교에 들어가 늦깎이 공부도 시작했다. 서른두 살에 띠동갑 동기들과 시작한 공부는 결코 만만치 않았다. 그곳에서 농업기술과 경영 비법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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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대 갈등, 지금은 서로가 이해하고 양보하죠"

젊은 영농인들의 본진인 4-H회에서 지역 회장으로 활동하며 든든한 동지들도 만났다. 초반에 나이가 너무 많다는 자격지심에 다가가지 못한 그에게 젊은 후배 영농인들이 먼저 손 내밀며 찾아와 주었다. 정부의 지원 사업이나 새로운 창업 소재가 나오면 정보가 신속하게 공유되고, 판로가 막혔을 때에는 서로 도움을 주고받기도 한다. 영농 후계자든 귀농인이든, 젊은 농부들은 ‘후발주자’ 일 수밖에 없다. 젊은 사람들이 하나둘 떠나는 농촌을 다시 일으켜 세우고 정보를 공유하려면 네트워크가 절실했다. 하지만 처음에는 사람이 없어서 많이 힘들었다.

 

"제가 부산 지역 4-H회에 들어갔을 때 회원이 딱 한 명 있었어요. 젊은 사람들을 조직화하려고 정말 열심히 뛰어다녔어요. 도시농업박람회부터 시작해서 많은 홍보를 했습니다. 지금은 많이 활성화되었지요. 그러다 보니 아버지와 갈등도 많았어요. '농사짓는놈이 밭에 있어야지 왜 자꾸 밖으로 돌아다니느냐'는 꾸중을 많이들었지요."

 

세대 갈등은 젊은 영농 후계자들이 두루 겪는 고민거리 중 하나다. 외부 행사들은 얄궂게도 꼭 농사일 바쁜 시기에 몰렸다. 4-H회 활동뿐만이 아니다. 양액 재배(수경 재배)로 농법을 바꾸고 싶었지만 아버지는 돈이 많이 든다며 반대하셨다. 처음에는 야속하고 답답했지만 전혀 이해 못 할 바는 아니었다.

 

 "초반에는 많이 힘들었습니다. 지금은 서로가 이해하고 양보합니다. 연세가 있는 아버지께 무조건 모험을 감수하시라고 고집 피우기는 어렵지요. 이제는 아버지도 저를 많이 이해하려고 노력하시는 게 눈에 보입니다. 제가 자리를 비우면 '일이 있나 보네' 하고 그냥 이해해주십니다. 그러다 정 바쁘면 오늘은 농장에 있어야 한다고 귀띔하시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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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이웃들과 함께 나누는 수확의 기쁨, 체험 농장

친구네 식구들을 불러 농막에 앉아 고기 굽고 토마토도 따 먹으면서 놀다가 송창화 대표는 '체험 농장' 사업을 떠올렸다고 한다. 2015년, 미소농장은 농촌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기 시작하면서 '미소체험농장'이 되었다.

 

줄기 끝에 싱싱하게 매달린 채소를 직접 따는 경험은 도시 아이들에게 흔한 기회가 아니다. 체험 프로그램들 중에는 부담스러울 만큼 참가비가 비싼 곳도 간혹 있다. 농사 일정에 지장을 주면 안 되니 수확기 끝물에 프로그램을 시작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송창화 대표는 갓 올라오는 열매 그대로의 모습을 아이들에게 보여 주고 싶었다고 한다.

"첫 토마토를 수확할 때, 첫 가위질을 하는 모습을 아이들과 함께하고 싶었어요. 느끼게 해 주고 싶더라고요. 아이들은 몸집이 작으니까 어른이 들어가지 못하는 곳에도 쏙쏙 들어가서 따 가지고 나와요. 어른도 아이들도 워낙 좋아하니까 저도 참 뿌듯했습니다."

 

송창화 대표에게 농사는 '내 가족의 건강을 지키는 근간'이다. 채소와 김치 그리고 쌀까지 직접 키웠기 때문에 내 가족이 안심하고 먹을 수 있다. 그만큼 자부심도 강하다. 내 가족에게 안심하고 먹일 수 있는 만큼 다른 사람이 믿고 먹을 수 있는 것은 당연하다.

"습기 때문에 곰팡이가 슬거나 열매를 따기 전에 벌레가 올라오니까 처음에 친환경 농약을 한 번 칩니다. 그다음에 줄기가 올라오고 나면 벌레도 안 잡혀요. 우리 딸은 밭에서 토마토 따서 소매에 쓱쓱 닦아 바로 베어 먹어요. 그래도 되거든요."

 

청년 농부가 농업의 미래다

 

농업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맞선을 통해 지금의 아내를 만나 결혼식을 올렸다. 꼬물꼬물 뛰어다니는 네 살, 두 살 아이들과 아내의 배 속에서는 셋째가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고 한다. 평생을 농사에 매진하신 부모님도 여전히 정정해 비닐하우스를 누비고 있다.

 

농사는 결코 쉽지 않다. 일 자체도 고되거니와, 오늘날 젊은 영농인들을 둘러싼 사회적 환경 역시 녹록치 않다. 하지만 젊은 영농인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은 상당히 고무적이다. 농업이 고부가가치화될수록 젊은 영농인의 수는 많아질 것이고, 젊은 영농인이 많아질수록 우리 농업은 더욱 선진화되고 발전할 것이다.

 

고되고 힘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님에도 그는 지금의 젊은 농업인들이 부모 세대만큼 나이를 먹게 될 즈음이면 농사짓는 사람들이 이 사회를 먹여 살리게 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송창화 대표는 젊은 사람들이 더 많이 들어와서 농촌을 지키고 우리 농업을 지켰으면 좋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청년 농부들이 만들어 가는 농업의 미래, 그 길을 송창화 대표와 미소농장이 묵묵히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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